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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비법이 현해탄을 건너온다.일본 3대 우동으로 꼽는 미즈사와 우동, 한국 상륙.

 우동은 일본의 대표적인 면 요리이다. 일본사람들은 실제로 하루에 한 끼 이상은 꼭 우동을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우동에 사랑이 대단하다,

 우동은 일본인들에게 있어 한국 사람에게 '죽'과 같은 음식이라고 한다. 즉, ‘밀가루 음식은 소화가 잘 안된다’는 편견 때문이다. 그러나 우동은 숙성된 면에 뜨거운 국물이 배어들어 소화가 잘되는 음식이라 일본인들은 주식(主食)처럼 즐긴다.

 지역과 먹는 방법은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밀가루를 주원료로 하여 만든 통통한 면을 익혀 다양한 재료로 만든 고명을 올려 먹는다.

 아오키 마사루(青木正児)의 ⌜혼둔(곤동)의 역사(饂飩の歴史)⌟에 따른 우동의 역사를 보면 우동(饂飩)은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에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혼둔(饂飩) 또는 곤동(混飩)이라는 얇은 밀가루 피에 고기소를 넣어 찌거나 끓이는 음식의 음훈을 따 운동(温飩)이라 불리다가 점차 오늘날의 표기인 우동(うどん)으로 변화한 것이라 전해진다.

 일본 최초의 면은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에 당나라에 사절로 파견된 켄토우시(遣唐使)가 중국에서 들여온 밀가루와 쌀가루를 함께 반죽하여 노끈처럼 가늘게 새끼줄 모양으로 만든 사쿠베이(索餅)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밀반죽을 새끼줄 똬리처럼 꼬인 모양으로 무기나와(麦縄)라고도 불렸다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36~1573)에 이르러 밀을 빻는 맷돌과 풍차 제분이 도입되면서 면이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되어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7)에 이르러서는 밀과 소바(そば, 메밀)를 원료로 하는 각종 면이 등장함에 따라 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생겨나기 시작하여 우동, 소바와 같은 면 요리의 대중화의 발판이 되었다.

 이후,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1868~1912)에는 제면기계가 개발되어 면의 소비가 크게 증가하였고, 우동을 비롯한 면요리가 본격적인 서민 음식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지역별로 특색 있는 우동이 개발되었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도쿄의 ‘나베야키 우동(鍋焼きうどん, 1인분용의 뚝배기에 면과 츠유, 여러 재료를 넣고 끓인 우동 요리), 오사카의 ‘기쯔네 우동(きつねうどん, 유부를 얹은 우동) 등이 있지만 현재 일본의 3대 우동으로 불리는 카가와(香川)의 사누키 우동(讃岐うどん), 아키타(秋田)의 이나니와 우동(稲庭うどん), 군마(群馬)의 미즈사와 우동(水沢うどん)이 있다.

 그 중, 미즈사와 우동(水沢うどん)은 군마현 관동 지방 우동의 대표 격으로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우동이다. 군마현은 내륙 부 상류에 있어서 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하고, 일본에서 밀 생산이 두 번째로 많은 지방이라 우동을 만들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다.

 군마현 시부가와 시 이가호마치의 미즈사와 부근에 있는 사찰 미즈사와 관음시찰과 신사에 참배객들이 참배하러 온 김에 근방에 풍부한 온천수로 유명한 이코보 온천에서 온천욕 후 허기를 달래기 위해 이곳 군마현의 밀과 미즈사와 산(山)의 약수로 만든 미즈사와 우동(水沢うどん)을 먹게 된 것이 유래가 되었다.

 미즈사와 우동(水沢うどん)은 밀가루 반죽을 발로 꼼꼼히 밟은 후 숙성과 펴는 과정에서 덧 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열 번 정도 반복해 자른 다음 햇볕에서 두 번 말려 만들어 다른 우동 제조법보다 숙성 기간이 길어 면발이 쫄깃하고 탄력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군마현 시부가와 시 이가호마치의 미즈사와에 있는 미즈사와 우동 본사 식당

 원래는 일반인에게 전해지지 않고 일가(一家)에 비전되던 우동이었으나 佐藤養助라는 분의 노력으로 세상에 제법이 공개되어 특허취득 후 지금은 일본의 14개 매장에서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으며 곧 한국에서도 비법의 맛을 볼 수 있다.

자료출처: 세계 음식명 백과

차재만  cjm716@sns365.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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